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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나쁜 교육 - 덜 너그럽고 편협한 사회가 만들어진 과정

 

이번달 성장판 발제독서모임의 지정도서.

내 취향을 생각하면 쉽게 손이 가지 않았을 책인데, 독서모임을 통해 이렇게 새로운 생각들을 만나게 되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7660489

 

나쁜 교육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와 교육단체 수장 그레그 루키아노프는 ‘대단한 비진실’들이 어떻게 미국의 새로운 세대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는지 심층적으로 파고든다. 오늘날 대학 공론장 악화의 배경에...

www.aladin.co.kr

 


 

이 책의 원제는 <The Coddling of the American Mind>이다. 여기에서 coddling이란 '과보호'를 뜻한다.

그래서 처음엔 안아키같은 책인가 부모들의 과보호를 비판하는 책인 줄 알았지만 내용은 현저히 다르다.

 

 

비진실들이 지배하는 편향적인 세상

 

먼저 젊은 세대들에게 널리 퍼져 있는 세 가지 비진실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우리를 더 약해지게 한다
  • 늘 너의 느낌을 믿어라
  • 삶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사이의 투쟁이다

이렇게 보면 이해가 잘 안가서 좀 더 부연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지나친 안전주의

 

미국에서 땅콩 알레르기를 피하기 위해 견과류 및 견과류 제품 일체를 금하다보니 오히려 땅콩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들 수는 늘었다고 한다. 백신은 위험 요소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소량 노출시켜 향후 유사한 위험을 만났을 때 거기에 맞서는 배움의 방법을 가르친다.

신체적인 면 뿐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나쁜 감정들을 배제하지 않고, 대처하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물론 나쁜 감정들이 생기는 논란들에 대해서도 피하지 않고, 맞서서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의 경제나 정치 생활 속에서 작동하는 중요한 체제 중에는 우리의 면역 체제와 비슷하게 돌아가는 것들이 많다. 이들 체제 역시 배우고, 적응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저런 스트레스 요인과 도전을 반드시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런 단단함을 지닌 체제들은 어떤 식으로든 도전이 가해져 거기에 열심히 반응하도록 압박을 받지 않으면, 나중에는 오히려 경직되고, 힘이 빠지고, 효율성마저 잃는다.

(나쁜 교육 p46, 조너선 하이트/그레그 루키아노프, 프시케의숲)

마!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되는 거라고. 알간? (feat. 김난도 교수님)

 

2) 인지왜곡

 

논리적이지 않은 여러 오류들(감정적 추론, 재앙화, 과도한 일반화, 이분법적 사고 등)이 습관화되면 사소한 것에도 감정적으로 추론하게 되고, 그 느낌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의 행동을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수 백 가지의 오해가 생겨나고, 이를 미세공격으로 받아들이면서 속칭 '프로불편러'가 된다.

'의도(intent)'보다 '영향(impact)'을 중시할 때 그러한 오해들은 더욱 증폭된다.

 

그 답은 우리가 교육의 목적을 무엇으로 여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시카고대학교 총장을 지낸 해나 홀본 그레이는 언젠가 이런 원칙을 제안했다. "교육의 목적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 있지 않다. 교육이란 모름지기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데 뜻을 두어야 한다."

(나쁜 교육 p94~95, 조너선 하이트/그레그 루키아노프, 프시케의숲)

이미지 출처 : 동대신문 https://www.dg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209

 

3) 편가르기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의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즉석에서 중요하지 않은 기준에 의해 만든 집단이라 하더라도 동일한 집단에 소속될 때 더 공감한다.

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함께 행동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위에서 말한 인지 왜곡을 통해 상대방을 가해자로 공개적으로 지목하고 싸잡아 비난하는 대규모의 조리돌림은 문제가 된다.

이것이 나쁜 이유는 내가 가해자로 지목될까봐 솔직한 내 의견을 내비치지 않기 때문이다.

집단 간 갈등이 불거졌을 때 하나로 의기투합해 대비할 수 있도록 진화가 우리에게 부여해준 자질이 바로 부족주의다. 이 "부족 스위치"가 켜지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집단에 더욱 단단히 동여매게 되고, 집단의 도덕 매트릭스를 품에 끌어안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며, 그러는 동안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둔다.

(나쁜 교육 p108~109, 조너선 하이트/그레그 루키아노프, 프시케의숲)

 

이런 이유로 세상은 점점 편향적으로 변한다.

 

 


 

이러한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 책에서는 이런 현상들의 원인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살펴본다.

주로 2013년부터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었다고 하는데,

 

첫 번째는 양극화이다.

소련 붕괴 이후 커다란 공공의 적을 잃게 된 것은 부족 내 갈등을 야기했고, 분열된 부족들끼리는 또 다른 결속이 일어났다.

(커다란 공공의 적이 사라지면 대체할 적을 찾아낸다.)

정치에 있어서도 마찬가진데 내 스탠스와 다른 편의 의견에는 혐오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2013년부터 대학에선 일부 우파들의 적의와 괴롭힘, 혐오 범죄가 증가했고, 이는 곧 편향적인 믿음을 강화했다.

 

두 번째는 십대의 불안증과 우울증 증가이다.

과보호로 인해 아이들은 점점 정신적으로 나약해진다.

그리고 사교 활동보다 미디어 소비가 많아진 것이 우울증 증가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우울증과 불안증은 인지에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세상을 실제보다 더 위험하고 적의에 찬 곳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세 번째는 편집증적 양육이고, 네 번째는 놀이의 쇠퇴다.

1981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살인 사건으로 인해 낯선 이에게서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최상위권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이 점차 치열해졌다.

그러다보니 여러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야외 놀이보다는 소수가 함께 하는 실내로 아이들을 밀어내었다.

이런 놀이 경험의 쇠퇴는 친교의 기술, 원만한 갈등 해결 기술 등의 스킬 뿐 아니라 어린 시절 갖가지 도전, 부정적 경험, 사소한 리스크 감수 등을 하며 쌓을 수 있는 회복탄력성까지 떨어뜨린다.

 

다섯 번째는 관료제다.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대학의 노력이 학생들을 고객으로 인지하면서 사고가 날까봐 걱정하여 캠퍼스 내에 안전주의 문화를 팽배하게 하였다.

이런 규제들이 발언의 자유를 제약하며, 학교 안에서 감정적 추론의 비진실을 확산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료주의적 수단(신고전화, 대응팀 등)은 학생들에게 도덕적 의존성만 높여, 졸업 후에도 학생들이 독립적으로 갈등을 풀어나갈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지나친 정의 추구이다.

과정의 정의와 분배의 정의를 함께 이루어가며 동등한 결과물이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정의를 추구하다보면 결과가 손상되고, 결과를 추구하다보면 정의가 손상되기 마련인데 요즘은 정의를 추구하고 있다.

 

 


 

결론은 위에서 제시한 문제들에 대한 타파다.

먼저, 헬리콥터맘, 타이거맘처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자녀들에게 남다른 입지를 확보해주고자 아이들을 과보호하고, 과도한 일정을 짜주며, 과잉양육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저런 인지왜곡들을 해결하기 위해 의식적인 변화도 필요한데, 학교도 변화해야 하고 전국 차원의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것도 제안한다.

대학들은 생산적인 의견 충돌을 지향하고, 다양한 사람들로 최상의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미국 대학에서 일어난 일들을 많이 사례로 들어 친숙하지 않고 중반부가 지루해지는 데 있다.

굳이 미국으로만 한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지역과 인명을 가리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대입해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은 교육으로 한정하여 부모와 대학만 비판하였다는 점이다. 아, 그래서 책 이름이 '나쁜 교육'인가?

사실 사고가 편향되는 것은 왜곡된 보도를 일삼는 미디어들의 황색 저널리즘과 신기술로 포장된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역할이 더 클 수도 있다.

또는 세상을 바꿔 나가기 위해서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더욱 참여해야 할 것인데 이런 부분의 지적은 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한 사람으로써 정글같은 세상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재밌게 읽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놀랄만한 일들이 터져 나오지만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고민보다는 쌓여있는 분노를 폭발시키는데만 치중하는 모습이 가끔 보여서 더욱 안타깝다.

더 좋은 사회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더 너그럽고, 덜 편향적인 사회가 더 좋은 사회임은 분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국가가 권력을 통해 나의 표현들을 통제하였다.

거기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오늘 내가 다른 이들의 표현을 통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본다.

 

 


 

#COOKIE 1

 

검색하다가 아래의 칼럼을 읽었다.

대화를 통해 너와 나의 세계를 허물 때,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http://20timeline.com/9360

 

‘프로불편러’가 연애하는 법

사랑하기 때문에 그만큼 실망했었던 우리의 이야기

20timeline.com

 

#COOKIE 2

 

책의 내용을 오늘날 한국 사회에 대입한 사례를 하나도 소개하지 않은 이유는 그렇잖아도 끔찍한 일들을 다시 복기하기 싫어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하나만 소개하자면

 

광주의 한 중학교에서 프랑스 영화 '억압받는 다수'를 성평등을 위한 교육자료로 수업 시간에 상영했다가 스쿨 미투를 당하고 해당 교사는 직위해제를 당한 채 수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52392?no=252392&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

 

성평등 교육했는데 '성범죄자'로 몰아 넣은 광주교육청

프랑스 영화 <억압받는 다수(Majorite Opprimee)>는 엘레오노르 프리앗(Eleonore Pouriat) 감독이 2010년에 만든 11분짜리 단편영화다.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성적인 괴롭힘 등 젠더 이슈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문법은 단순하면서도 공격적이다. 감독은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남녀의 상황을 완전히 뒤바꿈으로써 여성을 향한 남성 중심사회의 폭력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이 때문에 성인지 감수성이 희박하거나 성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

www.pressian.com

혹시라도 부적절한 내용인지 궁금했는데, 유튜브에 올라와 있었다.

10분 59초의 짧은 영상이니 정말 문제가 되는 영상인지 확인하고 싶은 분들은 직접 확인해도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9Q4Kxn-YWaw&feature=emb_title

 

 

#COOKIE 3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작년 트렌드인 감정 대리인을 복기하는 부분에서 아래와 같은 예시가 나왔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미리 경험해보는게 과연 좋을까?

 

“제가 여러분을 한번 혼내도 될까요?” 일본 도쿄 도시마구 다이쇼대학교의 한 강의실에서 조금 특별한 강의가 열렸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 강의 주제는 ‘잘 혼나는 법’이다. 입사 후 상사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것에 대비해 미리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경험해보고, 꾸중을 들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잘 혼나는 법은 운동으로 치면 낙법과 같다. 공격을 당했을 때 큰 부상을 입지 않기 위해 낙법부터 배우는 것처럼 정신적인 부상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부정적 피드백을 미리 경험해보는 것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0 中, 김난도 외, 미래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