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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심리]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 다원주의가 필요한 시대의 심리학

 

 

성장판 발제독서모임 이번 달 지정 도서인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아들러 심리학을 오랫동안 연구한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미움받을 용기>로 유명하지만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미움받을 용기보다는 이 책이 분명하게 쓰여 있어서 읽기는 편했던 것 같다.

 

 


 

'다윈주의'에서 '다원주의'로

 

어떤 사람이 물었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아들러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주어진 '인생의 의미'라는 것은 없습니다. '인생의 의미'는 당신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입니다."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중, 기시미 이치로, 살림)

 

아마 이 부분에서 많이 밑줄 치지 않았을까?

교육을 받고 사회화가 되면서, 미디어에서, 심지어 요즘은 SNS에서 우린 인생의 의미를 투영받는다.

어떤 성공 방정식에 맞춰 살지 않으면 엉뚱한 결과가 나올 것을 걱정하면서...

 

이런 책이 인기를 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로 돌아서고 있다는 방증인 것 같다.

실제로 <미움받을 용기>는 장기 불황의 끝자락에서 뭘 해봐도 안 되는 '사토리(득도)' 세대의 절망과 울분, 포기하지 않으면 괴로울 수밖에 없어 급기야 소소한 곳에서 행복을 찾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할 수밖에 없는 내면의 심리를 건드려 일본에서 대박을 치고, 1년 뒤 한국에서 80만 독자의 선택을 받는다.

 

심리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학자인 프로이트는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보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다윈의 진화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본능적인 욕구에 주목한 것도 인간과 동물이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다윈주의'의 영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들러는 그와 달리 인간의 마음을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보았다.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고,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고 설파한 것이다.

라임을 맞추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다윈주의'에서 '다원주의'로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 부분이 아들러 심리학을 주목해야 할 첫 번째 이유이다.

 

남의 삶에 그만 신경끄자.

 


 

'동기 부여'에서 '용기 부여'로

 

아이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크게 보이기 위해 발돋움한다. 이 간단한 방법으로 성공과 우월감을 얻으려고 한다.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한다는 건 아이를 향한 애정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의 용기가 꺾였기 때문이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이를 '평범해질 용기'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보통으로 있을 용기가 없기에 우선은 남들보다 특별히 잘하려고 한다. 그리고 만일 해내지 못할 경우에는 특별히 나빠지려고 한다. 비뚤어지거나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간단히 '성공과 우월감'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중, 기시미 이치로, 살림)

 

아들러는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 인정 욕구가 불행하게 만든다고 하였다.

평범한 사람은 우월 콤플렉스도 우월감도 가지지 않는다.

우월감은 언젠가 벽에 부딪힐 때 우월 콤플렉스가 되고, 우월 콤플렉스는 자칫 상대에 대한 우월감으로 변모하는 악순환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월 콤플렉스와 우월감은 꾸중과 칭찬에서 생겨날 수 있어 조심할 필요가 있다.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패를 겪을 경우, 아이는 자신에게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근과 채찍으로 '동기 부여'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니라 아이에게 자립할 수 있는 '용기 부여'를 해야 한다.

강압적인 부모가 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수용, 타자 신뢰, 타자 공헌 중 어느 하나도 결여되어서는 안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고, 다른 사람들은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것을 믿어야 하며, 스스로의 존재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육아의 심리 목표로 '나는 능력이 있다.'라는 점을 꼽은 이유는 바로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야 그러한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그때 그 능력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능력이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다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해치려 한다고 믿는다면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공헌하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세 가지 조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행복해질 수 없다.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중, 기시미 이치로, 살림)

 

'자기 수용'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라는 말인데 자기 자신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자신에 대한 시점을 바꿔보라는 조언이 유익했다.

자기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무척 어렵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생각하고 시점을 바꿔 보자.

예를 들면, 성격이 어둡다고 고민할 때, '다른 사람이 상처 받지 않도록 늘 남을 배려한다는 점에서 착하다'라고 시점을 바꾸면 라이프스타일의 내용이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우리는 비로소 변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결과가 어떻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갖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용기 부여'다.

 

'타자 공헌'은 '타자 신뢰'는 도움을 타인과 주고받는 것이라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혼자 힘으로는 어려우니 타인의 도움을 분명하게 청하고, 나도 다른 이들의 도움에 대한 답을 해 준다.

그래서 다른 이들보다 내가 '먼저' 행동하고 실행하다보면 그런 개인이 모여 성숙한 공동체를 이룩할 것이다.

 

 

평가는 능력있는 사람이 능력없는 사람에게 상대를 내려다보며 하는 것인가?, 출처: MNET, 언프리티랩스타

 


 

 

<오즈의 마법사>에서 용기를 찾고 싶었던 사자는 도로시 일행과 함께 하면서 괴물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목숨을 걸고 싸운다.

어느 날 용기는 마법처럼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견뎌 내면서 같은 고난을 겪으며 전우애(?)를 형성했기에 그들을 위해 몸을 던질 수 있던 것이 아닐까?

나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손을 먼저 내밀어야겠다.